<콰이단> 후기
고바야시 마사키의 콰이단 (1964) 를 감상했다.
<지옥> 이나 <꿈> 같은 세트 촬영 공포영화를 좋아해서
<콰이단> 또한 만족스럽게 감상했다.
특히 일본 공포영화는
같은 동양 문화권이라 친밀한 것 같으면서도
굉장히 지역적이고 폐쇄적인 면모가
찜찜하고 기괴한 진흙같은 공포를 자아내는 것 같아
매우 좋아하는 편이다.
이 영화는 옴니버스 영화이기 때문에
따로따로 해체하여 후기를 적어보려고 한다.
<흑발> 은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고전적인 이야기라 좋았다.
출세를 위해 아내를 버린 사무라이가
결국 아내를 그리워해 집으로 돌아가
아내와 동침한 다음 날
아내의 해골과 귀신을 마주하는 순간이 인상적이였다.
사무라이가 아연실색해
발광을 하며 폐가를 돌아다니며
시꺼먼 머리카락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쓸때
장르적 재미가 터져나오는 것이 너무 좋았다.
<할복>도 그렇고, 고바야시 마사키가
장르를 제대로 다루는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.
두 번째 이야기인 <설녀> 는
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
이미지화되어 보는 것이 인상적이였다.
특히 나카다이 타츠야가 설녀를 처음 만나게 되는
그 눈내리는 산장이라는 공간의 질감이 좋았다.
낮은 색온도로 보여주는 추운 공간과
그 안을 지속적으로 채우고 비우는 폭설의 운동성이
마치 관객도 눈내리는 산 속에서 길이 막혀버린
감정과 두려운 정서를 잘 전달하도록 만들어 주었다.
<귀 없는 호이치> 이야기는
<콰이단>에 수록된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었다.
장님인 동자승이 귀신들에게 연주를 들려준다는 설정도 재밌었지만
무엇보다 인상적이였던 것은 시각적인 이미지였다.
사무라이들과 귀족들의 옷차림과
나룻배 위에서 펼쳐지는 전투,
버려진 터에서 나타나는 귀신들의 구도가
매력적이였다.
<찻잔 속에> 는
찻잔 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본 뒤로부터
귀신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재밌었다.
귀신에게 창칼을 들이밀며
점점 광기에 물드는 사무라이의 모습이 인상적이였다.
결말이 나오지 않고 끊기는 이야기가
파운드푸티지 영화들의 결말에서
주인공의 행방은 알려주지 않은 채 카메라만 남겨두는 것과 같이
오히려 찜찜한 느낌을 가미하는 것 같아 좋았다.